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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K-콘텐츠로 새로운 패러다임 연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 동포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5.08.11

[문화정책/이슈] K-콘텐츠로 새로운 패러다임 연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 동포들


지난 2023년 2월 6일 새벽 04시 17분 튀르키예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쉬주에서 규모 7.8, 세기의 재앙으로 꼽히는 초대형 지진이 발생했다. 한국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해당하는 AFAD(튀르키예 재난∙비상사태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진앙지 카흐라만마라쉬 파자르즉(Kahramanmaras Pazarcik)에서 지진이 지속된 시간은 80초였다. 이에 한국의 1.2배에 해당하는 12만 km²의 땅이 초토화됐다. 본진 9시간 후 규모 7.5의 여진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무려 11개의 주를 집어삼킨 공포스러운 모습은 가히 지구의 종말을 연상케 할 정도로 처참했다.


대지진 소식을 접한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해외 긴급구호대를 꾸려 곧바로 튀르키예로 들어와 구호활동을 벌였다. 국제 비정부 기구(NGO)도 임시 텐트와 담요, 방한복, 의료키트, 위생용품 등을 지원하며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긴급 지원을 시작했고 이와 함께 지진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중장기적 인도적 지원을 펼쳤다.


< 튀르키예 적신월사와 함께 지진 피해 현장을 답사하고 구호 활동을 펼치는 모습 - 출처: 대한적십자사 제공 >


대한적십자사도 대지진 발생 직후 튀르키예에 긴급 조사단을 급파해 2023년 2월 16일부터 3월 1일까지 튀르키예 적신월사와 함께 지진 피해 지역을 돌며 인도적 지원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현장에서 세운 계획들은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지진 재난 모금 활동을 벌여 총 402억 원의 성금을 모아 튀르키예 적신월사가 펼치는 구호 활동에 필요한 물적, 인적 자원을 지원했다. 지진 이재민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주거지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기 3개월간 식사를 지원했고, 임시 주거시설과 임시 지역 서비스 센터와 혈액원, 다목적 센터를 건립하며 재건 복구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국제적십자사로서의 역할을 신속하게 해나갔다.


튀르키예 정부 요청에 따라 지진의 진앙지이며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인 파자르즉에 컨테이너 시티(한국-튀르키예 우정의 마을) 1,000동 건립을 곧바로 추진해 그 해 10월 지진 이재민들이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적십자사를 포함한 국제적십자∙적신월사가 해외에서 인도적 지원을 펼칠 때는 현지 적십자사가 인도적 지원의 주체가 된다. 타국 적십자사는 주체 기관과 긴밀히 공조하면서 후원 및 협력자로 필요한 모든 인도적 지원을 신속하게 공급한다.


대한적십자사가 국민 성금을 모아 튀르키예 정부 요청으로 카흐라만마라쉬주 파자르즉 지역에 세운 '한국-튀르키예 우정의 마을'은 양국 관계에 있어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하는 곳이다. 파자르즉 지역은 6.25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 군대가 한국을 돕기 위해 출정한 이스켄데른(ISKENDERUN) 항구에서 불가 두 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튀르키예는 물론 우리나라에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곳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튀르키예 군인들의 희생이 담긴 곳이었는데 70여 년이 지난 현재는 한국인들의 사랑으로 보금자리가 세워진 것이다. '한국-튀르키예 우정의 마을'은 양국 국민 모두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 지진 이재민 식사 및 임시 주거시설 지원 - 출처: 대한적십자사 제공 >


대지진이 발생하고 2년이 흐른 지금 '한국-튀르키예 우정의 마을'에 입주했던 이재민들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한적십자사가 튀르키예 적신월사와 공동으로 이재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는 행사 동행 취재에 나섰다. 이번 행사는 기존의 적십자가 해 온 행사와는 준비 과정부터 달랐다. 대한적십자사 현지 파견 대표 박재석 팀장이 튀르키예 적신월사와 절차 전반을 조율하는 가운데 이재민들을 위한 봉사활동 프로그램 계획을 세우는 데는 튀르키예 내 넓은 사회적 이해와 네트워크를 가진 현지 동포와 한인 유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번 행사의 콘셉트도 대한적십자사 동포 봉사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모여 기존의 봉사활동과는 달리 'K-콘텐츠를 활용한 봉사활동'으로 차별화하기로 했다. 세계적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한국 전통놀이를 이재민들과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지난 2년을 슬픔으로 지냈을 이재민들이 K-전통놀이를 즐기며 잠시나마 기뻐하길 하는 바람이 모든 봉사원들의 마음에 가득했다. 그런데 날씨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차량 계기판이 54도로 찍혔다. 처음 보는 기록적인 고온의 날씨에 놀란 것도 잠시, 봉사원들은 이 날씨에 이재민들이 얼마나 참석할지 몰라 염려했다. 그러나 행사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응급조치 교육, 재난구호용 텐트 설치와 같은 프로그램과 더불어 K-콘텐츠를 활용한 봉사활동이 펼쳐졌다. 먼저 태권도를 중심으로 한 봉사활동이다. 튀르키예 사범의 지도에 태권도 교육이 시작됐다. 사범은 한국의 여느 체육관에서와 같이 힘찬 구령 소리를 내며 몸통 지르기와 발차기 시범을 보였다. 어린 수강생들도 힘찬 기합소리를 지르며 따라 했다. 특별히 이번 봉사활동에는 앙카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유은미 교수가 단장으로 프로그램들을 계획을 세웠는데 자신의 제자들도 현장을 찾아 양국의 역사와 형제애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한국어문학과 튀르키예 학생들도 어린 수강생들 사이에서 기합소리를 내며 열기를 더했다. 지진 트라우마로 정신적인 고통을 오랜 기간 겪어온 어린 수강생들이 이곳에서 태권도로 기합을 지르며 구령을 크게 낼 수 있는 것은 정신적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현지 사범은 "지진을 겪은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는 괴성을 지르거나 공격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은 많이 줄었다. 태권도를 통해 정신적으로 건강해진 모습을 보게 됐다."고 전했다.


< 튀르키예 현지 사범이 컨테이너촌 아동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어진 프로그램은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여러 세미나실에서 동시 진행해야 했다. 어느 세미나실에서는 아이들에게 딱지치기를 보여주며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했고, 다른 세미나실에서는 제기차기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축구에 더 익숙한 현지 아이들은 제기차기를 마치 축구처럼 해 웃음이 절로 났다. 다음으로 준비해 놓은 공기놀이의 경우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아쉽게도 진행하지도 못하고 다른 놀이로 대체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세미나실에서는 전통문양의 열쇠고리를 만들어 보고 부채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은미 단장은 돌아다니며 작품 아래 붓 펜으로 한글 이름을 적어 주었는데 참석자들은 이에 매우 행복해했다.


< 제기차기, 딱지치기, 전통문양 열쇠고리 만들기, 부채 만들기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통신원의 시선을 끈 시간이 있었다. 바로 앙카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2학년 학생이 『단군신화』를 활용해 구연동화를 펼치는 모습이었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기일 텐데 단군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고 어린아이들에게 구연동화로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알고 보니 이미 교사로 일을 했었고 한국어문학과에 입학해 한국의 전통과 문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었다. 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충분한 양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 취재 도중 돌발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전혀 놀라지 않고 편안하게 전래동화를 전하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 '단군신화'를 구연동화로 들려 주는 앙카라대학교 한국어문학과 2학년 학생 - 출처: 통신원 촬영 >


둘째 날엔 한국 음식과 튀르키예 음식 경연대회가 펼쳐졌다. 대한적십자사와 적신월사 양국 봉사원들이 상대국 전문 셰프의 시연에 요리를 완성하고 지진 이재민들에게 맛을 평가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양국 봉사원들이 서로 낯선 상대국의 음식을 만들어 이재민들에게 평가를 받게 하는 경연대회 방식이 아주 흥미로웠다. 양국 봉사원들은 50도에 가까운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여러 활동들로 지칠 법도 한데 경연대회라는 타이틀에 다시 정신을 집중해 상대국 셰프의 시범을 열심히 따라 했다. 대한적십자사 동포 봉사원들이 만들어야 하는 음식은 튀르키예인들의 국민 음식인 케밥과 초르바(스프)였다.


한편 적신월사 봉사원들이 만들어야 하는 K-푸드는 떡갈비와 시금치 된장국, 그리고 장아찌와 시원한 과일 화채였다. 이때 주튀르키예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 왕 현 전문 셰프가 직접 참석했다. 튀르키예 음식 쾨프테와 비슷한 떡갈비의 모습에 양국의 음식이 닮았다는 평이 많았다. 한편 시금치 된장국을 메뉴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재난 시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이재민들의 부족한 영양을 채워 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재료부터 메뉴 선정까지 세심하게 준비된 경연대회였다.


< 양국 봉사원들이 상대국 셰프의 요리를 따라 하며 음식을 완성하는 경연대회 - 출처: 통신원 촬영 >


대한적십자사 동포 봉사원들의 마지막 봉사활동은 이번 파자르즉 지진에서 생존한 한국전 참전용사 노병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위해 통신원도 작은 힘을 보탰다. 현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노병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하게 해 온 현지 동포들의 활약상을 취재해 오면서 튀르키예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사업회와도 자연스레 소식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는데, 파자르즉 지역에 생존하신 노병이 계시다는 정보를 얻고 찾아가 인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 양국 봉사원들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카디르 쵸락(KADIR CORAK) 노병을 방문한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카디르 쵸락(KADIR CORAK) 노병은 자신의 집까지 찾아와 처음 인사드리는 양국 봉사원들을 집 밖까지 나와 맞이하며 무척 상기된 표정으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문 앞 현판에서 카디르 쵸락 노병의 가옥이 튀르키예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사업회가 국내 NGO 후원을 받아 새로 세운 곳임을 알 수 있었다. 2023년 대지진으로 집이 붕괴돼 천막에서 지내고 계시다는 사실을 전해 받고 새 가옥을 지어 드리게 됐다고 한다. 내 나라 국민들께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자랑스러움이 들었다.


비록 1박 2일간의 짧은 행사였지만 K-콘텐츠를 활용한 여러 활동을 통해 대지진으로 상심한 이재민들의 마음에 위로가 전해졌기를 바란다. 대한적십자사 동포 봉사원들에게도 정말 뜻깊은 봉사활동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대한적십자사 제공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YTN world 해외 리포터,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 튀르키예 지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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